편집자주|변호사, 회계사, 의사, 약사···. 만인의 부러움을 받는 전문직들이지만 그들의 '운명'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많게는 10만명이 넘는 이른바 '사'자들의 미래를 바꿀 입법 쟁점을 분야별로 정리한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NH농협금융지주와 그 계열사들이 올 회계연도부터 외부 감사인을 안진 회계법인에서 한영 회계법인으로 돌연 교체했다.
금융당국과 회계 업계에서는 부실기업 대출에 대한 충당금 처리 문제 등을 놓고 NH농협금융과 안진이 갈등을 빚은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회계 업계는 NH농협금융이 안진에 회계 처리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NH농협금융 측은 "안진이 결산이 완료된 상황에서 회계기준을 번복해 결산 및 공시 업무에 혼란이 발생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양쪽 모두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세부적인 책임소재를 떠나 우리나라 회계 업계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회계 감사인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하면서 회계 투명성이 침해받고 있다. 또 수임료 인하 경쟁이 격화되면서 회계 품질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이른바 '감사인 지정제 확대 법안'과 '감사인 의무교체 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됐다. 여기에 '감사-컨설팅 중복 금지 법안'도 올라와 있다. 향후 공인회계사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이 법안들이 회계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 "상장사, 금융사 감사인 정부가 지정"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22일 상장사와 금융사에 대한 회계 감사인을 금융위원회에 설치된 증권선물원원회가 지정토록 하는 내용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동안에는 회계상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만 외부감사인 지정제를 적용해왔지만, 앞으로는 이를 상장사와 금융사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회계 업계는 대체로 감사인 지정제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지금과 같은 자유수임제 아래에서 수임료 무한경쟁을 펴는 것에 비해 수임료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기업들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모든 상장사와 금융사에 대해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겠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봐도 지나친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 "감사인 의무 교체 반대" 회계 업계 속내는?
회계 감사인을 적어도 6년마다 교체토록 하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현재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말 발의한 것으로, 회계법인이 한 기업과 오랫동안 감사 계약을 맺으면서 생길 수 있는 유착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같은 취지로 적어도 9년마다 회계 감사인을 교체토록 하는 이종걸 새정치연합 의원의 법안도 역시 정무위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다.
감사인 의무 교체제도는 2009년까지 운영되다가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사라진 바 있다. 감사인의 잦은 교체가 감사 품질을 저해될 수 있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회계 업계는 지금도 마찬가지 근거로 감사인 의무 교체제도의 재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사인의 잦은 교체가 회계 업계의 수임료 경쟁을 더욱 격화시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사인 지정제 확대나 감사인 의무 교체보다는 회계부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감사를 제대로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감사-컨설팅 중복 금지 법안'도 회계 업계의 관심사다. 감사 수임료가 턱없이 떨어지면서 컨설팅이 대형 회계법인들의 사실상의 '캐시카우'가 돼 있다는 점에서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해말 발의한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은 한 회사의 회계 감사를 맡고 있는 공인회계사 등이 그 회사나 계열사에 컨설팅 업무 등을 맡을 수 없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계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대형 회계법인 등이 회계감사 부문과 컨설팅 부문으로 법인을 분리할 경우 법안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여부 등이 변수로 지목된다.